본문 바로가기
시는 모르지만 시를 씁니다

늦은 저녁 드라이브

by 이샤프 2023. 2. 27.
728x90
반응형

어둠이 내리고 나서야 드라이브를 잠깐 다녀왔습니다.

멍하게 게으른 휴일의 끝에서 문득 생각 없이 밤의 길을 미끄러져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농촌과 공장들이 같이 있는 곳이라 도심에서, 도심이라고 부를 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많이 보이는, 조금만 벗어나도 인적이 드물어집니다. 공장들이 먼저 길가로 나와서 우두커니 서 있거나 앉아 있을 뿐이죠. 특이 휴일 저녁에는 더더욱 굳건하게 길가를 지키고 있답니다.

나름 번화가가 끝나는 지점에 종종 들러는 편의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 한 병 사고, 편의점 표 원두커피 하나 샀습니다. 요즘은 편의점도 많이 좋아져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라고 우습게 보면 큰일 나겠더라고요. 부드러운 느낌의 종이 컵과 두껑까지, 그리고 시럽까지. 여튼 이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지나는 길에는 작은 역전도 있고, 작은 마을도 있고, 문을 내리거나 인적이 끊긴 재래 시장도 있습니다. 서서히 지나쳐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한적한 길로 접어듭니다. 당연히 겨울이라 바람은 차겠지만 차창을 내려보았습니다. 첨엔 상쾌하더니 금새 추워지더군요. 나이가 드니 낭만도 같이 늙어가나 봅니다. 중우하게 잘 여미어지는 낭만이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얼른 창문을 올리고 운전을 해봅니다.

그리고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몇 분인가 걸으니 살짝 부는 바람과 그에 묻어오는 연한 물비린내가 잠시 고였다 가는 곳인 듯한 키큰 나무가 많은 곳이 있었습니다.

'아, 커피를 가져올걸'

후회를 했습니다.

손이 시리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던 탓이지요. 그래도 뭐 나쁘지 않습니다. 어차피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조금씩 어둠 사이로 보이는 저기 어디 낮은 곳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이쯤에서 머물다 가겠구나 했고, 그래서 여기쯤에 바람에게 안겨 온 물비린내가 고였다가 잔향을 남기고 사라졌겠구나 했었습니다.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길가 모퉁이 너머에서 가끔 훅 불어오는 바람이 또 남은 물비린내를 날려 새로운 바람이 데려올 수 있도록 비워두겠구나 했습니다.

우리 삶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머리가 아픈 일은 많지 않았으면 좋겠고, 감당하지 못할 만큼 힘겨운 일들도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큼만 시련을 준다고 했었던가요, 그건 어쩌면 우리가 당신 곁으로 가지 못하여 그저 그 시련을 버티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잖아요.

여튼 우리 삶도 어떨 때는 시련이 있더라도 금새 또 저 모퉁이에서 불어 오는 바람처럼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를, 그래서 축축한 바람도 맞았다가 마른 바람에 금새 또 상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자박자박 몇 바퀴 같은 자리를 맴돌면서 떠오르던 생각들이 커피생각으로 덮일 때쯤 다시 차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미지근한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다행이 차갑지는 않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밤길은 조용하고 차안은 포근했습니다.

728x90
반응형

'시는 모르지만 시를 씁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잘 참는 아이  (0) 2023.03.07
인생의 7가지 법칙, 그리고 변화  (0) 2023.02.27
자작시 - 구름 닮은꼴 그리움  (0) 2023.02.22
가슴이 시키는 일  (6) 2023.02.21

댓글